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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현상곡예(絃上曲藝)
[ 2019-09-17 09:12:33 ]
글쓴이  
관리자
조회수: 29        
참고 견디다 못해
마음이 허탈해지면
바흐를 듣는다.
바흐의 그 가늘고 기인 현(絃)을 타고
어느 꿈나라에라도 향하다 보면
내 허탈에도 다소
탄력(彈力)이 생긴다.

누구누구의
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죄이다.
우리 모두 무엇엔가 허기져서
허탈해진 상태.
지식(知識)이 오히려
쑥이 된 상태.

줄타기 곡예단원(曲藝團員)이
높은 공중에서 줄을 타듯
나는 오늘밤 바흐의 현(絃)을 탄다.
바흐의 현(絃) 위에서는
좀처럼 거드름을 피워도
낙상할 염려가 없다.

현상곡예(絃上曲藝)―박성룡(1930~2002)



며칠 전화기 없이 지냈습니다. 습관이란 무서워서 처음에는 손 둘 데, 눈 둘 데를 빼앗긴 듯 허전했습니다. 하나 차츰 산행(山行) 때의 기분으로 바뀌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맑고 고요한 골짜기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라 하면 과장이지만 주위의 사물들이 하나씩 살아나더군요. 보고 느낄 것이 육체의 눈앞에 실재하는 게 비로소 '삶'일 겁니다.



삶의 현장에서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느라 바흐 음반을 올렸습니다. 그의 음악은 '시원한 불'과 같습니다. 모난 것들을 모두 녹이지요. 신과 가까운 그의 음악이 '생활'에 묻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죄"가 아니었느냐, 하고요. 그러한 성찰이 온 후 마음은 온전히 바흐의 '현' 위로 올라갑니다. 그 위에서의 '거드름'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취(醉)한 거니까요!

-장석남 시인-
[출처] 현상곡예(絃上曲藝)―박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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